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필요한가?
구 동완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요지에 대해 가짜뉴스의 제작 및 유통으로 부당한 수익을 얻고 있는 언론(주로 뉴미디어)에 대한 응당한 처벌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므로 개정안은 오히려 기성 언론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최근 뉴미디어를 주축으로 불확실한 정보들의 확산으로 인해 확증편향이 심화되고 있고 가짜뉴스가 이를 부추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로인해 언론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고, 기자의 위치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얘기가 나돈다. 드러나는 것만으로도 언론이 위기에 처했음을 보여준다. 뉴미디어를 언론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는 차치하더라도, 공동체를 분열시키고 불신의 도가니로 빠지게 만든 것에 언론은 분명 일정부분 가담했다. 그렇다면 과연, 개정안이 우리 사회에 이미 팽배해져버린 언론에 대한 불신을 상쇄시키고,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가? 법 개정을 통해 미래를 낙관하기보다 근본적인 진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정농단의 연장선상에 있는 삼성 뇌물 의혹 사건에서 우리는 다수의 언론사 간부들이 당시 삼성의 미래전략실 장충기 차장에 어떤 청탁을 요구했는지 알고 있다. 삼성으로 대표되는 재계와 언론의 유착뿐 아니라 정치 및 사법 권력과의 결탁은 하루이틀이 아니다. 더군다나 기존 지면 광고를 활용한 기성언론의 수입이 줄어들어 재계와의 유착은 생존에 필수적이기까지 하다. 검찰과 정계는 각각 자신들의 목적과 정략에 따라 언론을 활용한다. 그 속에서 피의 사실이 누설되고 무죄 추정의 원칙은 쉬이 무시된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허위 뉴스를 척결하고, 민간 피해자를 보호한다고 하지만 국민이 갖는 언론에 대한 혐오를 불식시키기에는 부족하다. 본질은 ‘언론의 신뢰 상실’이다. 각종 권력을 견제해야할 언론이 도리어 그들과 손잡거나, 혹은 권력이 언론을 이용하는 작태는 개정안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언론 소비 환경도 문제다. 최근의 여론 형성 과정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조직적이고 집단 편향적인 양상을 띤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여론을 파악한답시고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커뮤니티다. 정치인들은 커뮤니티에서 다뤄지고 있는 내용을 인용해서는 정치적 선전을 위해 활용한다. 내용의 자극성은 중요치 않다. 그 뿐만인가. 커뮤니티가 중심이 되는 조직적인 여론 형성과 정당의 지지는 정보의 선택적 소비를 방조한다. 게다가 지지세력이 모여있는 커뮤니티를 쉽게 무시할 없는 정치인들은 자신의 생명 연장을 위해 이들의 주장과 관점을 재강화시킨다. 이러한 환경에서 언론발 정보는 편향적인 것이며, 무가치한 것으로 내버려져야 한다. 이미 뿌리 깊은 양당체제로 사회 분열의 골은 깊어졌고 그 속에서 정치와 언론, 오피니언 리더들은 그 체제를 위해 봉사한다.
각종 권력과 언론의 유착 관계, 정보의 선택적 소비를 방조하는 환경. 덤으로 가세하는 기술 혁신은 오늘날 언론에 대한 불신을 가속화시킨다. 언론중재법을 개정하면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 믿는가? 2005년, PD 수첩이 황우석 박사의 연구를 문제삼았을 때, 당시 국민적 공분을 등에 엎은 여야 정치권은 국가적 연구를 방해하려 한다며 담당 PD들과 거대 방송사를 사장시킬 지경에 이르게 했다. 여기서 정보의 허위 여부는 중요치 않았다. 이 사건은 언론이 권력과 합치된 다수의 여론에 맞서 있을 때 얼마나 처참히 스러질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오늘날 언론이 신뢰를 잃게 된 근본적 원인에 장막을 씌우고, 법제도 개편을 통한 처벌 강화로 해결될 수 있다는 진단은 오히려 차기 권력으로 하여금 언론의 활용 가능성을 높이는 격이 된다. 메신저를 단죄할 것이 아니라 메신저를 활용하려는 권력과의 관계를 끊어내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법은 표현 가능성의 폭을 더 넓히고, 사상의 자유시장을 보장해야 한다. 반대로 그것을 활용해 부당한 이익을 취득하려는 모든 권력을 감시해야 한다. 이를 통해 언론은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고, 국민의 언론에 대한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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