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空港)의 시대
구 동완
우리는 ‘공항’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태블릿을 집어 들었더니 새 소식들이 쏟아진다. 북한 미사일 뉴스뿐 아니라 포털에서 추천하는 자동차의 새로운 트렌드, 내가 구독한 게임 유튜버의 새 영상, 어제 인터넷으로 주문한 제품의 발송 알림까지 셀 수 없다. 그야말로 ‘공황(恐慌)’이다. 정보에 노출되고 싶지 않지만 눈을 뜨면 당장 손이 탁상의 스마트폰으로 향하고, TV에서 앵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리는 걸 어찌할까. 이미 삶 깊숙이에 미디어가 침투해 있고 피할 수도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알 수 있는 정보량이 늘어나고 세상의 변모도 시시각각 포착할 수 있지만 마음은 갈수록 공허해진다. 나는 무언가를 잃고 있는 걸까.
이러한 심리적 불안감은 무언가에 집중하지 못할 때 오는 것 같다. 우리의 마음 씀씀이는 크기가 그렇게 넓지 않기 때문에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과부하의 상태에 접어든다. 이 과부하는 마음이 진정 신경 쓰고 있는 요체가 빠진 두루뭉실한 무언가들로 채워져 있다. 프랑스 영화감독 자크 타티의 작품 <플레이 타임>은 현대인이 처해 있는 바로 그 ‘공황’ 상태를 지적한다. 영화 속 주요 배경은 ‘공항’이다. 그런데 관객들은 그곳이 공항인지 눈치채기 힘들다. 초현대적 미장센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스크린 속 사람들은 그냥 분주히 움직일 뿐이다. 그게 전부다. 영화엔 이야기도 없고 음악도, 주인공도 없다.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땐 그야말로 ‘공항’에 온 느낌이었다.
공항은 정신이 없다. 그 공간은 수많은 삶들의 온갖 맥락들이 겹쳐 ‘공황’ 상태를 연출한다. 결혼 10주년을 기념해 여행을 가려고 온 사람, 저 멀리 비즈니스 차 출장을 떠나려는 사람, 공항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각선미를 뽐내며 위풍당당하게 걷는 스튜어디스 … <플레이 타임>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우리가 평소 멀티플렉스 영화관에서 접하는 영화들과 다르기 때문에 관객들은 당황한다. 공항에 온 것 같이 어수선하다. 그러나 조금만 더 집중해 스크린에 보이는 미장센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인물들의 맥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심지어 감독 자신이 카메오가 되어 공항을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코미디 요소도 보인다. 그제서야 비로소 작품은 개별적 미장센의 총합으로써의 내러티브 영화가 아닌 합을 해체하여 각각의 객체에 맥락과 주체성을 돌려주는 영화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다.
스마트폰, TV, 거리의 간판, 지하철의 광고, 버스의 라디오 등 수많은 매체에 둘러쌓여 우리의 삶은 <플레이 타임>의 공항에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공항의 시대’는 중의적이다. ‘공항’은 수많은 맥락이 뒤섞여 있기 때문에 그 자체로 ‘공황’을 야기하지만, 마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개별적 객체에 집중한다면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된다. 하루에도 수십수백 개씩 주입되는 정보들은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요체는 무엇인지, 그것의 필요 여부 등 우리의 판단 능력을 흐린다. 그럴 때마다 하나에 집중해 보자. 평소 소홀했던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과 순간에 집중해 보자. ‘공항’은 소중한 이들과 함께할 때 그리고 각각의 삶의 맥락에 집중될 때, 비로소 우리는 ‘공황’의 상태를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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